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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트위터를 통해 알게된 블로그에서 한국과 미국의 유턴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정확한 출처가 기억이 나지 않아 아쉽지만 한국은 유턴을 할 수 있는 곳을 정해 놓았고 미국은 할 수 없는 곳을 정해 놓았다는 차이에 대한 것을 쓴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포스트는 더 나아가 단지 유턴뿐만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규제에 대한 시각이 여기에서도 나타난다고 끝을 맺었다.

정리해 보면 한국은 허용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셈이고 미국은 금지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허용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쪽이 보다 개방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반대이다. 금지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쪽이 훨씬 개방적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허용의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쪽은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금지의 리스트는 이것 외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에 발생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한 쪽은 규정한 사람의 기준대로 움직여야만 한다. 이 경우 무언가 할 수 있는 범위는 규정한 사람의 능력 내에 있다. 우연성을 기대할 수 없는 통제가 기본이 되는 사회가 되어 버린다. 이런 사회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창의성은 일탈이 되기 때문에 사회는 천천히 움직일 수 밖에 없다. 반면 몇 가지를 제외하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회는 예측은 불가능 하나 어떤 방향으로든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창발성(Emergence)이란 개념이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결합이 복잡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간의 뇌를 예로 들면 하나의 뉴런은 인식능력이 없지만 수십억개의 뉴런이 결합하게 되면 자기 인식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 창발성은 명령을 내리는 조정자 없이 각 부분의 의사소통으로 자기 조직화를 이루게 되고 이러한 밑으로 부터의 힘은 예기치 못한 기능을 발현하는 힘을 말한다. 쉽게 생각하면 집단 지성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Web2.0이 촉발한 지금과 같은 시대를 손정의 회장은 메이지 유신기의 일본에 비유하고 클레이 셔키는 르네상스에 비유한다.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은 막부를 중심으로 전국이 번 체제하에 있었다. 또한 르네상스 이전 유럽은 소위 중세라고 불리우는 시대로 교회가 장악을 하고 있던 사회였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체제가 허용하는 방식대로만 살 수 있었고 모든 인간 관계는 체제 내에서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기의 일본, 르네상스의 유럽에서는 기존 체제가 약화됨에 따라 이런 허용 리스트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계급, 번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섞이기 시작했고 유럽에서도 인쇄술의 발달로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섞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전 시대의 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새롭게 스치는 사람들과의 약한 관계를 새로이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사람들이 새롭고 우연적인 자극에 노출될 수 있게 하였고 결국 창발성이 발현되기에 이른다.

지금의 시기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20세기를 시스템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20세기의 사회에서 인간은 시스템을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과 가깝게 생각하여 인간의 특성 보다는 시스템에 구겨 넣거나 교체가 가능한 자원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의 풍자는 이러한 일면을 부각시킨 것이다. 인간에 대한 생각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 놓여있기도 했다.

그러나 Web2.0 이후 사람들은 정보를 보다 능동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소셜 네트워크가 가미되면서 사람들은 약한 관계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또 다시 창발성을 발현하기 시작하였다. 메이지 유신, 르네상스, 그리고 Web2.0 이후의 시대는 기존의 의사조정자가 규정한 룰 대신 우연한 만남으로 인한 창발성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해 나간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허용의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 보다 하지말아야 할 소수 항목만 제시한 채 사람들의 창발성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지금의 시대 정신에 더 가깝고 더 나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와중에 아이폰이 나오고 페이스 북이 나오고 우리 정부가 바래 마지 않는 스티브 잡스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주도, 관 주도, 민간 주도 이런 말과 생각들이 사라져야 한다. 창발성은 누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무한히 확대하여 글로벌한 기업, 서비스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창발성의 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과의 접점이 확대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발현된 창발성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있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비단 정부나 관에서 뿐만이 아니라 언론, 그리고 대중들이 모두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ps. 불행하게도 창발성을 얘기한 스티븐 존슨의 이머전스나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해 얘기한 바라바시의 링크라는 책을 읽지 못한 채 그 언저리를 대충 이해한 상태에서 이 포스트를 써서 기반이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긴 이후 창발성, 링크에 대한 얘기를 다시금 접목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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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WeLuvMusic '링크'를 읽지 않으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게 보고 계시는군요.^^ 트위터를 접하면서, 책이나 직접 경험을 통한 통찰 못지 않게 짧은 '우연성'에 의한 통찰이 대단하다고 느꼈었는데 이런 이유였군요. NovaThinker님의 글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현상을 관통하는 통찰이 느껴질까요?^^ 이제는 읽기도 전에 선리트윗 하는 경우도 많아졌네요. 2010.04.14 22:29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performeister.tistory.com BlogIcon novathinker 항상 제 글에 관심 가져 주시고 이렇게 높이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행이네요. 책도 안 읽고 쓰는게 맘에 걸렸었는데요. 지니어스가 도움을 제대로 줬나보네요. ^^ 더 좋은 글로 보답할 수 있게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꾸벅 2010.04.15 09:5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emix2.textcube.com BlogIcon semix2 늘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늘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은데요, 웹 2.0에서 비롯된 집단 지성과 창발성은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허용과 금지, 정말 재밌는 주제에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네요. ^^ 2010.04.15 10:30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performeister.tistory.com BlogIcon novathinker 항상 잊지 않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기만 했는데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2010.04.15 14: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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