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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첫 영성체를 하는 아이들

번 주에 참석한 11시 미사는 첫 영성체를 하는 아이들을 위해 봉헌을 하는 미사였다. 천주교에서는 세례를받은 사람들만 미사중에 작은 밀떡 형상의 성체를 받을 수 있게되어 있다. 그런데 유아세례를 받아 세례는 받았지만 교리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때 까지 미사중 성체를 받을 수 없고 지정된 교리를 이수하여야 그 자격이 주어진다. 첫 영성체란 그렇게 완전한 자격을 갖춘 아이가 평생 처음으로 받는 성체를 의미한다. 신자로서는 나름 의미가 큰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성당에서 첫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나름 혹독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3개월로 알고 있는데 지정된 기간 동안 모든 미사와 교리 수업을 참석해야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미사는 평일에도 있고 특히 월요일에는 새벽 미사가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이 수행하기에는 벅찬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첫영성체 미사에서는 6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했다하여 상을 받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6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새벽미사를 포함하여 모든 미사를 참석하고 수요일 저녁에 진행되는 교리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부모들이 고생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첫 영성체를 개근하겠다는 아이들의 정서는 그런 것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많고 그 아이들은 코피를 쏟아가면서도 성당에 나가는 것이다. 누가 강요하거나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한다. 오히려 주위에서 안스럽게 생각하여 제지라도 할라치면 그 아이들은 무섭게 거부할 정도이다.

이 아이들은 나의 어릴적 경험과는 달리 성당이 너무 재미있고 그렇게 나가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취감도 느끼는 것을 보게 된다. 아이들은 순수하게 자신이 좋고 재미있는 만큼 열정을 부어 넣는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저들만큼 순수하게 열정을 부어 넣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열정 한 방울을 아끼기 위해 이리저리 재고 비교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이 아이들을 보면서 열정이야 말로 순수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순수하기 때문에 열정이 타오르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 때가 묻어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열정이 그만큼 타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전망이 어떻든 환경이 어떻든 그냥 좋아한 만큼 열정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 들었다.


episode #2. 공갈 빵을 굽던 청년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서는 중 아이가 갑자기 땅에 못이 박힌 듯 꼼짝도 하지 않는다. 짐짓 놀라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는 손가락으로 리어카에 있는 공갈빵을 가리키며 사달라고 한다. 그래서 리어카로 아이와 함께 다가갔다. 버스 정류장 옆에 세워진 리어카는 떡볶이와 오뎅, 그리고 호떡을 파는 집이었다. 여름이 되어 호떡은 공갈빵으로 바뀌어 있었다. 리어카 뒤에는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주머니와 아주머니를 꼭 닮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서 있었다.

분위기로 보아 그 젊은 친구는 아주머니의 아들로 보이는데 바쁜 어머니를 돕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였다. 마침 구워놓은 공갈빵이 다 떨어져 기다리는 동안 공갈빵을 만드는 것을 찬찬히 보고 있었는데 공갈빵을 만드는 솜씨는 아주머니 보다 아들이 한 수 위인것 같았다. 특히 판을 뒤집은 타이밍은 너무도 정확해 그 젊은 친구의 손을 빌어 나온 공갈빵의 노릇한 색은 거의 일정했다.

이 친구에게 공갈빵은 천직은 고사하고 직업도 아닌 그저 어머니를 도와주는 정도에 불과했으리라. 그럼에도 공갈빵에 대한 성의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 이 정도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관찰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밑받침되었을 것이다. 일 자체가 아니라 어머니를 위한 일이 동기가 되었다 해도 결과는 일로 나타나서 내 눈에 각인되었다. 이러한 청년이 만약 자신의 천직을 찾는다면 이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면 현재에 충실한 이러한 자세는 또 다른 기회를 안겨 줄지도 모른다. 공갈빵을 굽다가 이것으로 새로운 사업기회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이러한 자세가 눈에 띄어 좋은 곳에서 취업의뢰가 들어올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내가 처해있는 환경적인 문제들을 현실에 충실하지 못할 이유로 또는 게으름의 핑계로 삼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본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라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뜻이 맞지 않는다 해서 현실에서 도망치려고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해 본다.

앞으로 내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그리고 현재가 나의 계획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 지는 사실 인간의 머리로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현실에 충실한 것 뿐이다. 공갈빵을 굽던 그 젊은 친구는 공갈빵 반죽을 주므를 때는 그것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미래를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도 지금 내가 해야만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충실해 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현실에 매몰되지 말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도 말아야 겠다. 현실과 미래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괴리감을 느끼는 대신 그저 동경하고 고민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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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ㄴㅁㅇㄻㄴㄻㄴㅇㄹ.ㄴㄹㅇ BlogIcon 인리 소셜네트웍과 다중인격에 관한 글을 읽다가 우연히 들어와서
    필자께서 쓰신 글을 계속 읽는 중입니다만, 평소에 제 생각과 너무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무척 반갑게 느껴졌는데 알고보니 천주교신자이셨군요. ^^
    저 역시 천주교신자다보니, 세상을 살면서 뭔가 제가 믿는 가치를 세상에 조금이나마 실현해보고싶은 욕심이 무척이나 많습니다.그래서 필자께서 쓰신 글에 많은 부분 공감했나 봅니다.
    앞으로도 종종 들르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10.10.15 09: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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