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라면 광고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안성맞춤이라는 말은 안성의 유기제조상들이 한성의 양반들의 입맞에 꼭 맞는 유기를 만들어 내었다는데서 유래하고 있다. 예쁜 구릿빛을 가진 방짜유기는 양반가의 상징으로 대대로 물려 쓰는 그릇세트였다. 그러나 스테인레스, 양은 그릇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세척하기 힘든 유기는 점점 수요가 줄게 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안성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생산하던 유기장들도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고 한다.

며칠전 우연하게 본 다큐멘터리는 안성에서 유일하게 예전 방식의 유기를 제조하는 유기장을 다루고 있었다. 10대 초반 부터 40년간 유기와 함께 보낸 그 유기장은 그 많던 유기장이 다 사라지고 자신만 홀로 살아남았다고 담담하게 얘기하였다. 그 비결로 보여준 것은 동으로 만든 마패였다. 유기로 먹고 살기 힘들게 되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마패 같은 기념품을 제조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 마패를 보니 우리집에도 하나 있었던 것 같은데 어릴 때 박문수 흉내를 내며 가지고 놀았던 그 장난감 아닌 장난감이 그런 사연이 있었던 것이었다.




또 한가지 그 유기장이 알려준 사실은 유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거푸집의 재료였다. 원래 거푸집은 서해의 뻘을 퍼다 만드는데 자신은 고운 모래와 황토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의 의미는 옛날에는 고운 흙을 얻기 위해 달구지를 끌고 평택항까지 나가서 뻘을 퍼왔던 것을 고운 모래와 황토로 이를 대체하여 원가 부담을 줄였다는 것으로 받아들여 졌다.

이 유기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야 말로 진정한 비즈니스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명예(?)를 벗어 던졌다. 조선 최고의 유기를 만들던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이러한 와중에서 유기만을 고집하다 어쩔 수 없이 유기를 손에서 놓아야만 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바닥이라도 기겠다는 이러한 근성과 열정이, 자부심을 버리면서도 생명력을 길게 가져갈 수 있게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끔 직원에 대해 그리고 고객에 대해 범죄의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처를 주거나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을 비즈니스 생존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곤 한다. 이를 테면 불량 식품의 유통이나 하자가 예상됨에도 납품을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어려울 때 본성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 같다. 기업도 어려울 때 희생양에게 짐을 지우거나 넘어서는 안될 선을 야금야금 넘기도 하는 것이다.

어려워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을 보며, 그가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칭송하고 흠모하게 된다. 기업도 어려울 때 자신이 기업철학을 버리지 않아야 좋은 기업이고 오랜 기간 지속이 가능하다.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마피아나 기업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안성의 이 유기장 어르신은 그 어려운 시기에도 꼿꼿하게 서 있었다. 비록 기념품을 만들어 팔 지언정 이상한 유기를 만들어 팔지 않았을 것이고 유기를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열정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혁신의 단초를 찾아냈다는 점이다. 안성에서 서해안까지 뻘을 캐러 다니는 고비용을 극복하고자 고운 모래나 황토와 같은 대체물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옛부터 뻘을 사용하도록 교육을 받았고 자신도 그러했기 때문에 유기장 어르신 머리속에는 거푸집=뻘 이라는 공식이 아예 새겨져 있었으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유기장 어르신은 왜 뻘이어야 하는지 이것과 비슷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고 결국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 사실 이 고정관념의 탈피를 위해서는 모든 작업에 대한 의심과 고민이 수반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어려운 시기에 단지 손익분기점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혁신을 이루어 낸 것이다. 비즈니스가 어려워지면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연산 부호는 빼기(-)이다. 기업은 직원을 자르고 자산을 매각하는 빼기에 집중한다. 하지만 잘못 빼다가는 내년에 농사지을 볍씨마저 빼버리는 경우도 있다. 손익, 위기에만 집중하는 좁은 시각이 가져다 주는 병폐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기는 힘들다. 물론 빼기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은 비즈니스와 철학을 위한 고육책이 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빼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생존의 기로에서 비즈니스맨이 고민해야 할 것은 철학을 지키는 자세라 생각한다. 왜 비즈니스를 해야하는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없다면 생존의 기로에서 괴물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오물을 뒤집어 쓰더라도 그것을 놓지 말아야 함을 안성의 유기장 어르신를 통해 배웠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