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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슈&롬이라는 회사는 선글라스와 소프트 콘택트 렌즈 등의 혁신 제품을 상용화 함으로써 시장을 선도한 기업이다. 게다가 소프트렌즈는 그 자체의 수익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세척액 시장이 소프트렌즈의 규모를 앞지를 정도의 성장을 보였고 바슈&롬은 시력관련 기업으로 세상을 주름잡게 되었다. 이러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그들은 급기야 일회용 콘택트 렌즈라는 획기적인 제품을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양산체제까지 갖추기 이른다.

하지만 이들은 이 일회용 렌즈를 상용화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 이유는 일회용 렌즈의 경우 세척액이 필요 없기 때문에 바류&롬에 큰 수익을 가져다 주던 세척액 시장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경영진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존슨앤존슨사는 일회용 렌즈를 상용화하게 된다. 이들은 기존의 콘택트 렌즈의 경우 세척 및 단백질 제거를 게을리 할 경우 눈 안에서 파리와 같은 유충이 자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마케팅으로 바슈&롬이 장악하고 있던 콘택트 렌즈 시장을 일거에 뒤집는데 성공한다.

코닥도 이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던 이력이 있다. 코닥은 최초의 상용 카메라와 컬러 필름을 만든 혁신 기업으로 주된 사업영역은 역시 카메라에 들어가는 필름시장이었다. 코닥은 일본 독일의 다른 필름업체의 도전에도 끄떡하지 않고 시장을 선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보다 선명한 색상의 필름을 만드는 것은 자신들의 핵심역량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그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역시 세계 최초로 개발하게 된다.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보고 먼저 생각한 것은 역시 이것이 세상에 풀리면 필름 시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였다. 결국 코닥의 경영진은 자사의 시장을 잠식하는 제품보다 필름의 색상을 더욱 실감나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소니를 필두로 한 일본 회사들이 여러 종류의 디지털 카메라를 시장에 선보이며 필름 카메라를 시장에서 밀어내기에 이른다.

바슈&롬과 코닥은 사실 역사에 오를만한 혁신 기업이다. 한 기업은 선글라스와 소프트렌즈라는 그리고 다른 기업은 카메라와 필름이라는 혁신 제품으로 시장을 선도한다. 그러나 이들은 또 다른 혁신 제품을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용화하지 않고 목전에서 그 제품으로 시장을 통째로 내어주는 지경에 이른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된 것은 바로 혁신의 덫에 걸렸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혁신의 덫이란 이전의 혁신의 결과가 다음 번 혁신의 방해가 되는 현상을 빗대어 만든 말이다. 코닥과 바슈&롬의 경우 혁신의 결과로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이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도 혁신을 주도하고 이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위치는 확고해 졌을 것이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들의 공헌으로 회사는 많은 수익을 내고 시장에서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영향력은 회사에서 우월한 위치였으리라는 것 또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혁신이라는 것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처럼 앉은 자리에서 경험과 시간이 쌓인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했던 것과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혁신은 선형적이지 않다고 얘기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이 회사 내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서 나오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회사에서 혁신적인 결과를 사운을 걸고 진행하기에는 사내 정치에서 밀리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 장기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 확실한 경우 이를 선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이전의 혁신의 결과로 영향력을 얻은 집단이 새로운 혁신을 들여오는 가장 큰 반대 세력이 되고 이를 혁신의 덫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를 보면 이와 다르게 진행됨을 알 수 있다. MS-DOS라는 제품으로 시장의 선두에 선 MS는 Windows95라는 OS를 통해 자신의 텃밭을 깨부수며 혁신에 성공한다. 이후 MS는 IT업계에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만약 이들이 Windows가 기존 DOS시장의 잠식을 우려해서 이를 출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운영체제는 아마 다른 것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MS의 경우 애플이라는 경쟁업체도 있었고 Windows나 DOS가 코닥이나 바슈&롬과 같은 독보적인 발명품은 아니라 절대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에 있어 그들은 적어도 이전의 성공이 향후 발전의 발목을 잡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혁신의 덫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이 해답을 리더에게서 찾고 싶다. 만약 코닥이나 바슈&롬이 새로운 혁신 상품을 가지고 앞으로의 비전을 저울질 할 때 보다 냉철한 시각과 통찰이 있었다면 세상을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리더가 이에 대한 확고한 믿을 가지고 청사진을 제시하고, 필름 사업부 이사나 소프트렌즈본부장이 극도로 반대를 할 때 리더가 나서서 이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우리가 하지 않아도 다른 업체들이 시도한다면 우리의 지금 위치도 유지하기 힘들다고 설득하고 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해 주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보자.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조금이라도 잃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새롭게 얻는 것이 더 크다 할 지라도 더 큰 공포심을 가진다고 한다. 리더도 사람인 이상 여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며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비전을 제시하고 회사 구성원의 의견을 조정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인 이상 혁신의 덫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리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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