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알레시의 안나 G

보통 코르크 마개로 막혀 있는 와인을 따기 위해서는 나선형의 송곳이 달려 있는 와인 따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원래 와인 따개라는 것은 일부러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와인을 그리 많이 마셔 보지는 않았지만 와인을 사면 으레 가게의 판촉물 또는 포장에 끼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와인 따개는 필요성에 비해 각광을 받거나 대접을 받는 도구는 아니었다. 그런데 디자인계에서 히트상품으로 기록된 와인 따개가 있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생활용품 회사인 알레시에서 출시한 안나G라고 하는 와인 따개이다.

여자친구가 기지개를 켜면서 와인을 따주는 모습을 보고 착안했다는 이 제품은 한 때 전 세계에서 1분에 1개씩 팔리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 평소엔 돈을 주고 사지 않던 품목인 와인 따개를 5만원 상당의 돈을 지불하며 많은 사람들이 구매하고 싶어하는 물건이 된 것은 디자인의 힘이고 그 이면에는 사소함을 사소하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실이 되었다.

와인 따개에 사람의 형상을 입히고 코르크에 송곳이 들어가는 동안 올라가는 레버를 팔로 바꿔놓은 것은 사실 사소한 관찰에 사소한 발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와인을 따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와인을 주시하게 되고 이 짦은 순간 동안 치마 입은 아가씨가 기지개를 펴듯 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은 하나의 즐거움을 제공하게 된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저 와인을 음미하기 위해 필요한 불필요한 힘쓰기 시간을 하나의 동화 같은 순간으로 바꿔버린 것은 사소한 물건을 사소하게 보지 않고, 그리고 사소한 동작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디자인 해낸 알레시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이 능력은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았던 와인 따개를 히트상품으로 만들어 내었다.

맥북의 짦은 대기시간

이런 사소함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던 것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맥북을 사용했던 기간이었다. 맥북을 사용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사용을 하고 바로 덮으면 대기모드로 빠지고 다시 사용하기 위해 열면 대기모드에서 활성화하는 시점까지가 매우 짧았다는 것이다.

애플은 이 대기시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듯 하다. 이번에 선보인 새로운 맥북 에어는 아예 여기에 플래시 메모리를 달아 이 전환시간을 극도로 단축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폰을 받아 들고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런 사소함이었다.

대화 중에 혹은 길을 걷다가 아니면 집안일을 하는 동안이라도 갑자기 간단한 어떤 것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아이폰을 사용하기 전에는 노트북을 열어 이 욕구를 해소하곤 했는데 이런 때를 대비해서 대기 모드로 놓아 두었다 해도 컴퓨팅을 할 수 있을 때까지 1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어 버리면 단절감이 느껴지고 결국 김이 새 버린다.

그러나 아이폰의 경우 바로 검색이 가능하니 궁금함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기까지 끊김 없는 컴퓨팅이 가능했다. 그리고 아이패드의 경우 화면까지 크니 그 만족감은 극대화 되기에 이른다. 맥북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대기모드의 활성화 시간을 줄여나가려는 것이다.

대기모드에서 활성화까지의 시간은 어쩌면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기다림 자체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손을 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플은 이 사소함에 관심을 두어 컴퓨팅을 생활과 끊김 없이 연결하려 하고 있다.

안나G의 알레시와 맥북의 애플, 이들이 착안한 사소함이 단지 사소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이 거둔 성공의 크기를 볼 때 더더욱 그러하다. 어떻게 보면 혁신이란 이러한 사소함을 사소하게 보지 않는 데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본다면 사소한 것인 과연 사소하지는 않은 것 같다.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