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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태계라는 말은 생물 교과서나 잘해야 동물의 왕국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IT에서 생태계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IT에서 생태계라는 말을 유행시킨 장본인은 역시 애플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아이튠즈와 앱스토어 그리고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아이 형제들을 통해 개발자와 소비자가 그리고 애플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표본을 제시했고 이러한 오픈과 상생의 모델을 Eco system 즉 생태계라고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이 생태계라는 표현은 요즘에 각광을 받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사실 IT업계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IT라는 말을 듣게 되면 사람들 머리 속에서는 인터넷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IT의 태동부터 지금까지 단단한 척추처럼 그 명맥을 지탱해 왔던 것은 누가 뭐래도 기업서비스 영역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기업서비스 영역은 시장 규모도 상당하기 때문에 여러 생태계가 중첩되어 있다.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도 오라클이라는 데이터베이스의 절대강자가 만들어 놓은 생태계안에 포진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절대 다수의 기업들이 오라클이라는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고 있고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 제품을 개발하고 공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오라클이 생태계를 만들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이 제품 하나로 파생된 여러 분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오라클 설치, 유지 보수를 하는 업체, 인력이 있고 오라클의 영업을 대행해 주는 업체 인력이 있다. 그리고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업체들도 많다.

백업, 보안, 그리고 나의 주종목인 성능 등에 대해 여러 가지 툴의 개발은 물론 유지보수, 영업, 컨설팅 교육 등등 이러한 오라클 주변 벤더들의 규모도 오라클의 그것 못지 않다 할 수 있다. 여기에 업무와 오라클을 접목하여 솔루션을 판매, 개발하는 업체와 사람들까지 한다면 애플의 생태계를 버금가는 규모라 생각할 수 있다.

오라클의 생태계가 크다 해도 이것은 기업 서비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업들의 PC가 윈도우 시스템으로 구성된 만큼 MS의 생태계도 대단하다. 물론 지금이야 웹에 밀려PC에서만 돌아가는 업무용 소프트웨어가 오피스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큰 영역은 자바의 생태계이다. 이 생태계를 구축한 것은 자바를 개발한 선이 아니라 Web Application Server를 제공하는 BEA, 티맥스, IBM, 오라큼과 같은 벤더들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리치 클라이언트 일색이던 기업서비스 시장은 웹 클라이언트로 빠르게 변해갔다.

이들의 생태계에서는 이들 WAS벤더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개발자들이 포함되었고 오라클과 마찬가지로 WAS서버 영업, 유지보수, 컨설팅 등의 업체와 인력들이 이 생태계에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성능과 같은 영역에서 주변 솔루션 업체도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시스코, 주니퍼 등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생태계를 만들어 유지하고 있고 보안이나 가상화 관련한 여러 생태계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 서비스에서 이 생태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국기업에 있어 인수 합병은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지만 오라클의 인수 합병은 유독 눈에 띈다.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로 시작했지만 ERP, CRM등을 위시한 종합 소프트웨어 회사로 발돋움 하려 했고 BEA를 인수하면서 WAS시장의 절대 강자로 등극했다.

게다가 SUN을 인수하면서 오라클의 이러한 행보는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오라클이 이번에 출시한 엑사데이터라는 제품은 데이터베이스를 비롯한 소프트웨어에 최적화한 하드웨어이다.

사실 엑사데이터라는 제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년전 친분을 과시했던 HP와 함께 엑사데이터의 첫 버전을 만들어 내었으나 그렇게 돌풍을 일으키지는 못하였고 이번이 두 번째 버전인 셈이다. 이번에 출시한 엑사데이터는 리눅스 기반에 Sun의 여러 기술과 오라클의 소프트웨어들이 하나로 뭉쳐진 한 마디로 서버의 맥과 같은 느낌이다.

이 기기를 직접 테스트한 고객사의 담당자 말을 빌어보면 오라클의 성능에 가장 취약점인 디스크 IO에서 엄청난 이득이 있다고 한다.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는 원래 OS와 별개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였고 디스크 IO는 OS의 소관이었다.

하지만 엑사데이터는 OS와 데이터베이스가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 받아 디스크 IO를 통해 데이터를 전달 받아 필요한 데이터를 뽑아 쓰는 것이 아니라 디스크의 메모리에서 미리 필요한 데이터들만 뽑아서 데이터베이스에 건네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디스크 IO의 양은 상당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오라클이 하드웨어를 통해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높이는 것은 고객들에게 더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벤더들과의 소통의 한계로 불가피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라클의 엑사데이터로 이제 오라클 생태계에 있던 EMC와 같은 스토리지 업체들은 사실상 재앙을 맞게 된 셈이다.

엑사데이터가 얼마나 팔릴지 그리고 이것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라클의 이러한 행보는 오라클의 생태계가 오라클의 집중된 자본과 인수 합병으로 서서히 폐쇄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모바일에서 얘기하는 생태계처럼 오라클도 여러 생태계가 어우러져 같이 발전을 해 왔다. 오라클이 다수 미흡한 부분을 다른 벤더들이 보완하면서 큰 시장이 형성되어 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라클은 이 생태계를 자신이 만들지 않았다 생각하는지 이 생태계를 자신의 힘으로 고사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이 가중되면 과연 고객들은 끝까지 오라클을 선택하게 될지 생태계의 관점으로 지켜보는 것도 꽤 좋은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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