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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수사가 수도원장님을 붙들고 하느님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심각하게 묻고 있었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주방에서 주전자에 물을 담아 냉면 그릇과 함께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 수사는 의아하긴 했지만 한 손에는 물이 가득한 주전자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빈 냉면 그릇을 들고 수도원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수도원장은 정말로 하느님을 알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수사는 신념에 찬 얼굴로 수도원장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도원장은 냉면 그릇에 물을 넘칠 듯 말 듯 따르라고 했다. 수사는 그대로 따라했다. 수도원장은 물이 가득 찬 냉면 그릇과 수사를 번갈아 쳐다 보며 그럼 이 냉면 그릇을 들고 방을 한 바퀴 돌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방을 돌 때 물을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된다는 조건도 덧붙였다. 수사는 뭐 어려운 일이냐 싶어 냉면 그릇을 들고 조심 조심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수사는 온 신경을 냉면 그릇에 집중했기 때문에 방을 돌 때는 물론 냉면 그릇을 내려놓을 때 까지도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았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허리를 편 수사는 당당한 표정으로 수도원장을 바라보았다. 이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수도원장은 이렇게 질문하였다.

 

“잘했다. 그런데 네가 그 그릇을 들고 방을 돌 때 하느님 생각은 얼마나 했느냐?”

 

그 수사는 이 질문을 듣고 머리에 뭔가를 맞은 것과 같았다고 한다.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그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냉면 그릇을 들었지만 이내 그 목적을 잊고 손 안의 그릇만 쳐다본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한 방울의 물방울을 흘리지 않기 위해 하느님을 흘려버린 것이다.

 

 

현재 많은 기업들은 고객 우선, 고객의 니즈 등등 고객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을 비즈니스의 최전방에 내세우고 있다. 제품을 기획할 때도 생산할 때도, 그리고 판매할 때도 항상 고객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고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팔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항상 고객의 반 발자욱 앞에서 함께 한다면 그 기업은 지속적인 성공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기업들은 고객을 연구, 관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고객의 니즈를 먼저 파악해야 하는 사명을 띤 마케터들에게 고객을 아는 것은 수사가 하느님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에 비견될 만 할 것이다. 하지만 또 그만큼 고객을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뛰어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을 배치해 놓아도 기업들은 항상 고객의 마음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이 고객을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능력의 영역일까? 위의 우화를 바꿔서 자신에게 바꾸어 던져보는 것이 어떨까?

 

“나는 제품을 기획할 때 고객의 생각은 얼마나 했을까?”

“내가 제품을 개발할 때 고객의 생각은 얼마나 했을까?”

“내가 제품을 판매하거나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고객의 생각을 얼마나 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어쩌면 개별 업무 속에서 한 방울의 물조차 흘리지 않기 위해 고객을 잊는 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일이 한 번, 두 번 이렇게 쌓이게 된다면 우리는 원래 목적과 점점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객을 위한 일을 한다고 자신을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현실에 매몰되어 고객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자신이 만드는 서비스, 제품은 고객과 점점 유리될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진심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고객은 제품에 담긴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성이 없는 제품은 고객에게 외면 받기 마련이다. 우리가 제품을 만들고 이를 판매하는 것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인생은 그저 밥만 먹고 갈 때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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