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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여류 철학자 중 한 사람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의 영화를 발견했을때,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호기심이 먼저였다. “이 사람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극적이길래 영화까지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나를 이 영화로 이끌었다.


이 영화는 독일계 유태인으로서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한나 아렌트라는 학자가 2차 대전 전범인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하여 뉴요커지에 글을 게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 인정받는 학자로 행복한 나날을 지내고 있는 한나 아렌트는 어느날 뉴스에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아르헨티나에서 숨어살고 있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납치하여 이스라엘 법정에 세운다는 뉴스를 듣는다.



(출처: 다음 영화 )


아이히만은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책임자로 알려져 있어 이 재판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자신도 하마터면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지에 자신이 재판에 참석하여 기사 제공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요청하고 뉴요커지는 이를 받아들인다. 한나 아렌트는 곧장 이스라엘로 날아가 재판을 참관한다.


그러나 재판은 순탄치 않게 진행된다. 이스라엘 법정은 아이히만이 홀로코스트를 책임지고 이를 자행했는지를 규명해서 멋지게 사형을 선고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아이히만은 조금은 깐깐해 보이는 평범한 중년 아저씨의 모습으로 일관한다. 사람들은 그 평범한 속에 숨어있는 악마를 깨우기 위해 윽박지르기도 하고 홀로코스트에서 죽어간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며 울고 소리치고 욕을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아이히만은 자신은 히틀러의 말이 법이라 생각했고 이를 따라야만 하는 공무원의 책임을 다했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그것이 잘못된 행동인지를 몰랐느냐는 질문에 그러한 구별이 책임을 수행하는 걸림돌이 될뻔 했다고 일갈했다. 여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전 세계 유태인은 계속해서 분개했으며 결국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미국으로 돌아온 한나 아렌트는 이 문제를 다른 유태인들이 받아들인 것처럼 유태인에 잔학한 일을 행한 사람에 대한 징벌로 받아들이지 않고 평범한 사람도 이런 무서운 악을 행할 수 있다는 점에 천착하여 글을 쓰게 된다.


뉴요커지에 게재된 이 기사는 유태인들에게 하나의 파문으로 작용한다. 유태인은 자신들은 피해자이고 절대 악을 징벌하는 이 재판에 대해 담담하게 그는 평범한 사람이며 히틀러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고 유태인 지도자 중에서도 히틀러에 동조하여 희생자가 늘어난 것을 꼬집었다. 이에 유태인들은 분개했고 이스라엘 정부도 이에 동조했으며 미국의 유태인 학자들도 비판의 날을 세우기 시작한다. 외톨이가 된 그녀는 학생들 앞에서 짧지만 큰 울림이 있는 연설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악에 대한 연구로 평생을 보냈다고 하며 영화의 끝을 장식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다른 이들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누구나 보기 어려운 지점을 잘 포착해 내었고 그것은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에게 아이히만의 재판은 당연한 결론을 가져와야만 했다. 그는 명백히 자신들의 부모, 형제, 가족, 친구를 학살한 악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응징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여기에 함몰되지는 않았다.


그녀는 감정을 뒤로한 채 2차 대전과 같은 비극을 만들어 낸 악은 어디에서 왔고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집중했다. 그녀는 우선 아이히만을 관찰한 그대로 “평범한 한 남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평범한 한 남자가 어떻게 그렇게 극악무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평범한 누구라도 인간의 선에 대한 의지를 생각하지 않고 복종한다면 악마가 될 수 있음을 규명해낸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비슷한 시기 스탠리 밀그램이라는 심리학자에 의해 복종실험으로 증명되었고 또한 약 10년 후 필립 짐바르도라는 심리학자에 의해 스탠포드 감옥 실험으로 다시 재조명되기도 하였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필립 짐바르도의 감옥 실험


이후 한나 아렌트는 평생을 바쳐 전체주의와 싸워왔고 인간을 악마로 이끄는 것은 절대악이 아니라 우리 안의 양심의 선택을 저버렸을 때라는 것임을 주장했다. 결국 악은 평범한 데 있는 것이며 자신이 도덕과 양심을 외면하는 그 순간에 악이 잉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악을 악으로 판단하고 그것을 악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뉴스를 보면서 많은 권위와 분위기에 둘러싸여 아무말을 못하고 동조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침묵을 선택하고 선택을 강요받으면 협력으로 치우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닌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양심의 부조화는 결국 악을 점점 살찌우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협력하게 된다. 물론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나은 사회와 국가를 위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작지만 중요한 순간 순간 우리의 양심과 도덕의 소리에 귀 기울여 소용없을 지라도 약간의 저항을 해 보는 연습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적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바로 개인의 감정과 생각을 무시한 채 획일된 길만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이며 이는 다양성과 인간성을 말살하여 결국 비극으로 치닫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라면 모두 생각과 감정을 존중받고 사는 것이며 누구라도 이를 억압하거나 해치는 것은 그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악이라는 것은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한나 아렌트라는 영화의 백미라 생각하는 영화 후반에 나오는 연설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아마 그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으리가 생각한다.


'뉴요커'지의 요청으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가면서 법정이 정의의 실현에만 관심 있을 걸로 추정했어요.

간단한 일이 아니었어요

법정에 세운 아이히만의 범죄는 법률책에 나와 있지도 않았고 누렘베르크 재판 이전엔 알려지지도 않았던 범죄였어요

그래도 법정은 아이히만의 행위를 규정해야했어요.

재판의 체계도 없었고 역사와 주의 반유대주의도 없이 한 인물 뿐이었어요.

아이히만같은 나치 전범의 문제는 누가 처벌하고 용서하겠냐는듯 개인의 특성을 버린 주장이었어요.

그는 검찰 측 주장에 계속 이의를 제기했어요.

자신이 주도한 건 아무 것도 없고 선이든 악이든 의도가 없었으며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다.

이 전형적인 나치의 항변으로 거대한 악의 실체가 드러났어요.

평범한 사람이 저지른 악. 동기도 없이 행해진 악. 신념도 악의도 악마의 의지도 없었어요.

사람이기를 거부한 인간의 행위였어요.

저는 이 현상을 '악의 평범성'이라 이름 붙였어요.


아렌트 씨, 제일 논란이 되는 점을 회피하시는데 지도자들의 협력이 없었으면 유대인들이 덜 죽었을 거라 했잖아요.


재판에 나왔던 문제고 이 점에 대해 아이히만의 행위에 직접 참여했던 유대 지도자들의 역활을 명확히 한 거에요.


스스로를 말살했다고 유대인 탓을 했어요.


유대인을 탓한 적 없어요! 저항은 불가능했어요.

그래도 저항과 협력사이에 놓인 게 있어요.

그런 의미로서만 일부 유대 지도자들이 달리 행동했으면 했던 거에요.

이런 의문을 던지는 건 의미심장해요.

유대 지도자들의 역활로 인해 아주 놀라운 점을 간파했어요.

나치 때문에 훌륭한 유럽사회의 도덕이 완전히 와해됐다는 점을,

독일 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박해자 뿐 아니라 희생자들 속에서도…


학생 : 박해는 유대인을 겨냥했잖아요? 왜 아이히만의 범죄가 반인륜적이라 하셨어요?


유대인이 인간이기 때문이죠. 나치는 그 지위를 부인하려 했어요.

그런 범죄의 정의가 반인륜적 범죄에요.


아시다시피 난 유대인이에요. 그런데 나치를 옹호하고 동족을 멸시하는 자기혐오의 유대인이라 공격해요.

이건 논쟁이 아니에요. 이건 인신공격이에요.

아이히만을 옹호한 적 없어요.

다만 놀랍도록 평범한 한 사람의 망연자실한 행위를 받아들이려 한 거에요.

이해하려는 것과 용서는 달라요.

이해하는 게 내 책무라고 봤어요. 누군가는 책임지고 이 문제를 논해야한다고 생각했었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이래 대개 생각이란 이런 것이었어요. "나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

아이히만이 인성을 버리고 완전히 포기한 건 가장 인간적인 특성인 생각하는 능력이었어요.

그 결과 더는 도덕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어요.

이렇게 생각을 못 하면 수많은 보통사람들에게도 유례없는 크나큰 악행을 저지를 여지가 생겨요.

정말이에요. 이 문제를 철학적으로 숙고했어요.

생각이라는 바람을 표명하는 건 지식의 돛이 아니라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말할 능력이에요

내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생각의 힘으로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때 파국을 막는 거에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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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BlogIcon 행자 나치만을 악으로 정의하고 인류 자체의 반성이 없기 때문에 지금 팔레스타엔 학살이 자행되고 그 외중에 구경하면서 불꽃놀이라고 환호 축배하는 머저리 들도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만 나쁜넘이라고 매도한다면 언젠가 우리도 저렄 꼴이 되겠지요.
    팔레스타인 같이 비참한 일을 당하기도 삻지만 이스라엘처럼 (뭐라 표현할수 가 없네요)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얼마전에 본 영화가 생각납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별명이 리스본의 도살자라는 걸 알게된 손녀의 심정은어떤걸까요?
    2014.10.14 08:16 신고
  • 프로필사진 BlogIcon 진홍이 미국문화를 점령한 유태인에 의해 유태인을 그린 영화와 문학은 많지요.그런 유태인이 지금은 학살의 주인공으로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것은 분노가 일어나네요~ 2014.10.14 09:36 신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performeister.tistory.com BlogIcon novathinker 이 글을 쓴 이유는 악을 보고 침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두 분 의견에 동감합니다. 2014.11.27 20: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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