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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딸에게 엄마가 말했다.

“너 만할 때 엄마는 문학소녀가 꿈이었단다.”

“엄마 고등학교 때에는 논술이 없었나봐요?”


지난 7월 23일 정부는 내년도 중학생 신입생부터 SW 코딩, 프로그래밍을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하여 수업을 받게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갖춘 인재양성 기반 마련, SW 및 정보 보호 우수 인재를 조기에 발굴 육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작년 5월 부터 SW 프로그램의 의무 교육에 대한 계획은 매체를 통해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이번에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표된 것이다. 소위 SW 밥 좀 먹었다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나의 직군에 불과한 SW 프로그램을 전체 학생들이 일제히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한 논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도조차 하지 않고 걱정만 앞세운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SW 과목을 바라볼 때마다 논술 과목의 폐해가 투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말해 논술 과목이 학생들의 글쓰기에 끼친 좋지 않은 영향을 같은 방식으로 SW 과목이 한국의 SW산업에 끼치게 될 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라는 책에는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와 김수이 경희대 교수가 논술 과목에 대해 나눈 대화가 실려있다. 그들은 한국의 글쓰기는 논술이 과목으로 편성된 이후 그 거부감이 점차 늘고 있음을 조목 조목 짚어낸다. 그들은 교육 당국이 학생들의 논리력을 키우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로 육성하기위해 논술을 도입했겠지만, 교과 과목으로 편성되어 반강제로 시킨 결과 두 가지 목적 모두를 실패했다 일갈한다. 이에 대해 두 가지 문제를 제시한다.


그들은 글쓰기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다 못해 철천지 원수로 만들고 있음을 첫번째 문제고 꼽고 있다. 이제 문학소녀는 학생들 사이에서 냉소 속에서 고사할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글 첫머리의 부녀간의 대화는 이 냉소를 잘 나타낸다.


두 번째는 논리력 확보의 실패이다. 김수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의 입시 논술 채점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학생들이 써낸 논술의 80퍼센트 가량이 비슷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문제의식을 갖게 하지 않고, 계속 답만 달게한 교육이 낳은 참담한 결과죠.” 결국 논술을 통해 주제의식과 비판의식을 갖게 하겠다는 생각은 한낱 꿈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문제점은 SW 과목 편성 이후에도 그대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교과과정으로 편성된 이상 SW는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SW는 쉽게 술술 풀려나가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막히게 되면 많은 시간을 투입해도 해결이 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학생들이 논술에서도 쉬운 방법을 찾는 것처럼 SW 과목도 여러 편법들을 창의적으로 찾아낼 것이다. 이러한 부담감과 변칙 속에서 소위 프로그래머를 장래 희망으로 꼽은 학생들은 커가는 냉소 속에서 마우스를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겠다는 교육 당국의 야심찬 계획은 이렇게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SW에서 창의적 사고력은 사람들의 불편함을 인지하고 이를 SW로 해결책을 찾는데서 고양된다. 그러나 과목으로 편성된 이상 SW교육의 목적은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 해결 능력도 배양되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수학문제도 방법을 찾아낼 때 까지만 어려운 법이다. 결국 SW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이 문제와 답의 형태로 풀려나올 것이고 이는 결국 사교육만 더 부추기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논술 과목과는 달리 SW과목은 내포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교육 당국에서 ‘SW 및 정보 보호 우수 인재를 조기에 발굴 육성'한다는 목적을 하나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SW교육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이들을 찾아낼 목적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 SW엘리트를 선별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직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았으니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다만 체육 특기생과 같은 시스템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지금까지 SW 산업을 이끌어 왔던 사람들을 보면 누가 뭐래도 SW가 좋아서 시작한 사람들이다. SW 교육을 학교에서 억지로 가르킨다고 해서 인재들이 양성되지는 않는다. 도정일 교수는 논술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고등학교 1학년, 글이라곤 써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논술문 훈련을 시키는 것은 글쓰기를 전체적으로 피폐하고 부담스럽게 하는 일 밖에는 안돼요. 논술문을 쓰는 일은 다른 여러 종류의 글을 써 본 이후에 시도되어야 합니다. 다양한 글쓰기를 통해 왜 글을 써야 하는지, 글을 쓰는 일이 어떤 기쁨을 가져다 주는지를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 이것이 글쓰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SW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지 코딩을 잘하는 사람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기술 교육보다 기초학문을 더 강화해야 한다. 좋은 프로그램은 좋은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것이고 이 알고리즘은 결국 수학이다. 그리고 좋은 SW는 사람들의 잠재된 불만과 욕구를 찾아내어 이를 해소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과 욕구를 찾아내는 것은 결국 인문학이다. 또한 SW로 큰 기업을 일군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길러낸 것은 결국 대화와 독서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사람들은 SW노동자가 아니라 SW 예술가이다. 섣부른 판단으로 SW를 아이들의 적으로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SW가 중요하다면 SW를 가지고 놀면서 꿈을 꿀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부디 10년 후, 프로그래머가 되기를 바랬다는 아버지의 어릴 적 소망이 아들의 냉소로 되돌아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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