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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특이한 제목에 끌린 손은 책으로 들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책은 초등학생에게 소설 쓰기를 가르쳤던 경험으로 시작한다. 독특한 시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소설 쓰기를 쉽고 재미있게 인도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읽히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내공 덕분이다. 이를 소화하는 것은 여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아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그대로 소화하기가 녹록한 책은 아니다. 읽은 내용을 여러 번 되새김질해야 겨우 내 것이 된다. 그러나 어려운 소설 쓰기를 이 정도 난이도로 알려주는 책도 흔치 않음이 이 책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소설 쓰는 법을 20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차례대로 설명한다. 그렇다고 이 20가지를 그대로 나열한다고 그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바로 흡수할 수는 없다. 버릴 내용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날 것일 뿐이다. 간단한 조리만 거치면 멋진 음식으로 변하는 영양 많은 채소나 생선과 같은 상태에 가깝다. 이 20가지의 재료에 약간의 양념을 곁들여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생각 먼저 손은 나중
저자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무작정 연필부터 들지 말라고 충고한다. 충동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연필을 쫓아다니는 것에 급급하게 된다. 어떻게 마무리 지었다 해도 자고 일어나 다시 보면 몽땅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는 타당한 충고이다. 저자는 일단 머리 속으로 구상을 거듭하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 구상을 즐기라고 덧붙인다.

   1)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를 충분히, 마음껏, 실컷, 즐긴다.
   2) 첫 행은 되도록 꾹꾹 참고 최대한 늦게 시작한다.
   3) 기다리는 동안 전혀 관계없는 것을 생각한다.

얘깃거리 고르기
어느 정도 구상했다면 그중에서 어떤 내용을 쓸 것인지를 골라내야 한다. 작가는 자신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소설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쓸 수 있는 많은 얘기가 있겠지만, 남들도 쓸 수 있는 얘기는 버려야 한다. 자신만의 이야기 소재를 찾으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도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시각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소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쓰기 전에 고래 다리가 몇 개인지 조사해본다.
   5) 언제부터 쓰기 시작할지 고민한다.
   6) 쓰기 위해서 스스로 ‘바보’가 된다.
   7) 정말 알고 있는 것, 그것부터 시작한다.

이야기는 붙잡는 것
소재가 정해지면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것이라 일갈한다. 거리로 열릴 창을 통해 누군가를 찾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 누구를 찾기 위해 창밖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비슷한 사람이 나타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맞으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쫓게 된다. 

이야기를 붙잡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머리 속에서 흘러가는 이야기를 잘 관찰하고 이게 진짜 맞는지 요모조모 따져 본다. 그리고 맞는다면 붙들어야 한다. 이야기를 억지로 쥐어짜지 말고 관찰해서 붙잡아야 한다.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예술적 착상, 즉 ‘영감’은 자기가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존재로부터 받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도 소설을 쓰면서 고대 사람들과 비슷한 감흥을 얻지 않았을까? 미학에서 어떻게 설명하든 창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갑자기 떠오른다면 이와 같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8) 이야기는 쓰는 것이 아니다. 붙잡는 것이다.
   9) 철저히 생각한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다시 생각한다.
   10) 세계를 완전히 다르게 본다. 혹은 세계가 완전히 다르게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소설 쓰기? 놀아주기? 
이야기를 얻었다면 이제는 써야 한다. 어떻게 쓸까? 이번에도 작가는 '억지로'를 금지한다. 대신 소설과 놀라고 권유한다. 내가 쓰는 소설과 내가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고 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자고 한다. 이쯤 되면 작가가 어딘가 모르게 샤머니즘적 발상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과의 부단한 대화, 소통이라던가 쓰는 과정을 생생히 즐기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과 더 가까워 보인다. 여러 작가가 소설 쓰기를 노동 집약적 작업이라고 한다. 쓰는 것은 그만큼 힘든 작업인가 보다. 그러니 즐기지 않고서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11) 소설과 놀아준다.
   12) 상대가 날려준 공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13) 소설은, 어느 쪽인가 하면,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함께하기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라고 상대방 부모에게 애원하듯이) 보다는 그저 놀이 삼아 함께하는 쪽이 서로를 위한 일이 된다.
   14) 소설을 붙잡기 위해서는 내 쪽에서도 걸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15) 세계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문체의 시작은 흉내
자신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소설의 범주에는 소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체도 포함된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이 쓴 것 같은 문장, 구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흉내 내기를 추천한다. 
흔히 베껴 쓰기는 글쓰기의 좋은 훈련법이라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그냥 무작정 따라 쓰기는 맘을 편하게 해주는 효과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의 문체를 구분할 수 있어 이를 분석할 수 있는 경지에 와 있다면 가장 좋은 훈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도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이런 점이다. 
  
   16) 소설을 아기가 엄마의 말을 흉내 내듯이 흉내 낸다.
   17) 뭔가를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이다.

소설이란, 역시...
작가는 책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소설에 대한 정의를 조심스럽게 비친다. 그의 정의는 '소설은 자신에게서 배어 나오는 것’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소설은 정해진 틀을 쫓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흔드는 무엇인가를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오디션 프로에서도 참가자에게 하는 최고의 찬사는 “청중을 맘대로 들었다 놨다 하는 것” 아니던가. 소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의 평생 지녀왔던 생각이나 인생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굴절시키는 소설이라면 어떨까. 이런 소설이라면 평생을 추구해도 좋지 않을까?

   18) 소설을 말한다. 살아라 라고.
   19) 소설은 사진 옆에, 만화 옆에, 그리고 다양한 곳에서 돌연 태어난다.
   20)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라. 다만 아주 즐거운 거짓말을 섞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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