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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란의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에 대한 시각은 맘에 든다. 작년 이어령 교수는 빅데이터 컨퍼런스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은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고 이후 고민이 시작되었다. 

   빅데이터는 머신 러닝 기술과 함께 성장할 것이고 스카이넷이 등장하지는 않더라도 기계가 인간을 압도하는 날이 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 기술 발전은 인류를 해치는 쪽으로 질주하는 것이 아닌지도 걱정하게 되었다. 또한 인간의 창의력 상상력도 기계에게 압도당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결국 답을 찾은 것은 기계와의 협력이었다. 놀란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유머를 능숙하게하고 감정을 이해하며 거짓말 까지 하는 전천후 로봇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로봇은 끝까지 인간을 보좌한다는 자세를 단단하게 유지하고 있다.


배신자 만 박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이런 오지에 기계를 대신 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인간보다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계는 패턴에 민감하다. 패턴이란 과거의 어떤 반복적 상황이다. 돌발 상황이란 과거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에 패턴은 있을 수 없고 기계는 이에 대처할 수 없다.



가장 두드러진 장면은 역시 망가진 인듀어런스호에 화물선이 도킹할 때였다. 로봇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인간 쿠퍼는 같은 속도로 회전하는 묘안을 내놓고 결국 성공한다. 그에게는 이성을 앞지르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 이론, 패턴 기계가 인간 보다 더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써야할 지에 대한 판단은 인간이 더 낫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존재의 소멸이라는 근원적인 공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이고 이런 동물적인 감각은 만들 수 없는 것을 놀란은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우리는 왜 이러한 영화를 만들지 못하냐고 탄식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첫째로 미국사람들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둘째로 만약 부러워하는 지점이 과학이론을 영화로 잘 버무렸다고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교육행정가를 탓해야 한다. 문과 이과로 나누어 공부한 이상 자신이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인보다 더 큰 잘못을 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세째로 만약 기술과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철학을 영화속에서 잘 표현한 것이 부럽다면 나도 동감이다. 정말 부럽다. 단지 영화인 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미국에는 각 업종별로 직종별로 이런 철학적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개념들을 이해하고 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것이 임계값을 넘어 우리에게도 놀란을 놀라게 할 그런 감독이 나오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기계와의 협력에 대해서는 팰런티어의 CEO인 샤이암 생커가 한 TED 강연에 잘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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