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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각들

생각의 프레임

novathinker 2010.02.05 10:43
“창의력은 '관찰'에서 시작된다. '관찰'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사물/현상을 관찰하는 동시에, 관찰을 위한 '나의 프레임을 관찰'해야 한다. 관찰하는 나를 관찰할 때 창의가 시작된다.”

이 말은 @ReadLead님의 트윗 중 일부이다. 이 말은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인용해 보았다.

사람들이 어떠한 것을 받아들일 때 어떤 틀(프레임) 내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을 관(觀), 또는 스키마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것을 인지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은 한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이 프레임이 형성되고 고착화되는 과정이 진행된다. 이것은 오감을 통해 수없이 받아 들이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뇌의 방어기제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머리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뇌가 터득한 방법인 셈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은 상당

히 중요한 것이고 필요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프레임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에 자신이 갇혀버린 다는 것이다. 프레임을 가지고 살면 상당히 편하기 때문에 간사한 우리 뇌는 이 프레임 마저도 느낄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프레임에 의해 자동으로 처리되어 버린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도 이 프레임을 통해 처리해 버리기 때문에 그것의 장점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그 정보를 쓸모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버리기가 쉽게 되는 것이다.

“프레임에 대한 관찰”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실 관찰이라는 말 자체가 관을 살피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프레임을 살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 조상도 무언가를 볼때는 자신의 프레임을 살피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의미이다. 이 프레임을 살핀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프레임을 객관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접착제를 만드는 와중에 탄생한 포스트 잇을 예로 들어보도록 하자. 접착제를 만드는 사람에게 있어 자꾸 떨어지는 접착제는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보면 자신이 붙인다는 사실에 프레임을 둘러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면 이 프레임을 다른 것으로 살짝만 이동 시켜 떨어지지만 다시 붙는 다는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면 결국 포스트 잇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어떻게 보는지 객관화 시키는 것이 바로 “관찰을 위한 나의 프레임을 관찰하는 것”이 된다. 창의성은 이러한 프레임을 한 발 뒤에서 바라보고 내가 이러한 관점에서 이것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시작이다. 그래서 프레임을 확장해 보기도 하고 다른 프레임으로 맞춰 보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 바로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것은 사실 쉬운 작업은 아니다. 자신의 프레임을 매몰되어 있는 사람일 수록 이를 변경하는 것 부터 심리적인 저항이 형성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열린 마음으로 이를 바라보는 훈련을 계속하여 객관화 시킨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 된다.

여기 좋은 예가 있다. 일전에 TEDx Seoul이라는 행사가 신촌에서 열렸었다. 이것은 일종의 프레젠테이션 쇼인데 통찰력을 가진 명사들이 나와 자신의 얘기를 밀도있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제너럴 닥터로 알려진 두 분의 의사선생님도 연사로 초대되셨었다. 여기서도 이러한 창의력의 좋은 예를 확인할 수 있다.


왼편 그림에 두 분이 들고 계신 인형은 바로 청진기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고 있어 아이들이 병원을 무서워하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학습효과 때문인데 주사를 맞기 전엔 반드시 옷을 들어 올려 차가운 청진기를 댄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옷을 들어 올리고 청진기를 들이대면 좋지 않은 경험이 시작됨을 알기 때문에 그 때 부터 울기 시작한다.

이 의사선생님들은 관점을 달리 했다. 아마 이 분들 보다 청진기라는 것이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청진기에 대한 프레임이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애들이 울면 애들이 좋아하는 어떤 것을 가져다 달래는 행위만을 생각했지 청진기를 바꾸자는 생각을 하는 것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분들은 아마 어느 순간에 청진기를 바라보는 자신의 프레임을 알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애들이 좋아하는 인형이 청진기가 되면 더 이상 차갑게 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 분들은 또 다른 것도 소개한다. 그것은 목구멍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압설자이다. 아이들에게 압설자를 가져다 대면 순순히 입을 벌리는 아이가 드물다. 이 분들은 이 압설자 끝에 사탕을 매달아 아이가 순순히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압설자는 목구멍을 관찰하기 위해 방해가 되는 혀를 누르는 도구이다. 어떻게 하면 방해가 되는 혀를 잘 눌러 목구멍을 잘 볼 수 있을까라는 프레임을 혀를 즐겁게 하여 입을 벌리게끔 하자는 프레임으로 이동한 것이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가 선생님으로 삼아야 할 분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분들이다. 우리는 또한 좋은 선생님의 작품을 근처에 놓고 살기도 한다. 그것은 이 블로그의 단골 손님인 아이폰이다. 애플은 삼성과 같이 하드웨어를 선도하는 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기술을 재구성해 새로운 생활 양식을 만드는데 탁월한 기업이다.

아이폰이 나왔을 때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 했다고 한다. 이미 애플로 인해 만들어진 아이팟 터치의 프레임으로 아이폰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기존에 생성된 프레임으로 이것을 평가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팟 터치에 전화통신망과 GPS, 카메라가 달리자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사용해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애플은 프레임을 뛰어 넘는 혁신을 거듭하고 있는 회사인 것이다. 지금은 아이패드가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것은 아이폰의 프레임을 가지고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패드가 나와 사람들 손에 들어가면 그 프레임은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애플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얘기가 좀 빗나가고 있지만 하고자 하는 얘기는 단순하다. 우리가 좀 더 창의적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을 객관화 하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먼저 따져 보자.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니고 나의 프레임일 뿐이라면 다른 프레임으로 한번 바꿔서 보자. 이렇게 프레임을 자유 자재로 주무를 수 있다면 그 와중에 창의력이 생기고 아이디어가 나오고 결국 통찰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인생마저 달라질지 또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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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scilavinka.tistory.com BlogIcon Aptunus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것 같습니다.
    억지로 관점을 달리 해보려고 해도 전혀 창조되는 것은 없죠, 억지라는 것이 또 하나의 프레임을 상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애플의 신제품을 볼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난 왜 저런걸 생각하지 못했지??'.
    2010.02.06 21: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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